기획자 노트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기

기획자에게 있어 정보를 정리하고 정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기획의 초반 단계에 있어 이런 과정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혼자서 생각하는 경우에도, 여럿이 함께 아이데이션하는 단계에서도 해당된다. 쓸 데 없는 잔가지를 다듬으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중심 가지를 쳐 내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땐 정리는 뒤로하고 두서없이 무작정 밖으로 꺼내보고 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질문해 보자. 이것은 아직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고 맴돌던 무형의 것들을 유형의 것으로 정립하기 위함인데, 정리부터 하려다 보면 고민하던 본질보다는 정리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습관적으로 소위 있어 보이는 말을 하는 데에 신경을 쓰게 되고, 때로는 과정 없이 결론만 툭 내놓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내뱉고 고민해 본 결과가 비록 한 문..

기획자 노트 2023.07.20
내가 당신이라면

'내가 너라면'의 표현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제가 매니저님이라면', '제가 만약 의사 결정권자라면' 등 다양하게 변용 가능.) 1.부드러운 설득이 필요할 때 유용하다. (이건 결국 당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 이 건에 대해 내가 이러자 저러자 크게 푸시하진 않을 건데, 일단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2. 생각해보면 프로젝트 과정에 하게 되는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나도 상대방도 아닌 제 3의 대상에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이다. (이 디자인을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이번 작업 일정을 요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그래서 일에 대한 대화는 때때로 그 안에 속한 사람을 옅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씩 "제가 만약 과장님이라면 저는 이렇게 할 것 같아요...

기획자 노트 2023.07.10
용어의 통일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소통비용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중 하나가 프로젝트 중 양측이 사용하는 용어의 통일성 여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드민이라고 부르는 것을 누군가는 '관리자 페이지'라고 부르고, 다른 누군가는 그냥 '관리자'라고 부른다. 가능하면 서로 통일된 용어를 사용하면 좋은데, 웹에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고객사가 우리의 용어에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우리가 상대에 맞추는 것을 권한다. 우리와 상대의 용어 차이를 관찰해서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를 우리도 써보는 것. (이 관점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화법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관리자'요? 아~ '어드민' 말씀하시는 거죠? '관리자'는 사람이니까요~") 누군가와의 대화가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의 그것보다 더 쾌적하..

기획자 노트 2023.05.24
업무와 별개로 공부를 반드시 해야만 할까? 해야 한다면 무엇을 얼마나?

기획자의 학습과 성장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고 사람이나 회사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지금 하는 실무 경험을 내 자산으로 잘 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사실 잘 남기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님) 물론 실무를 할 때 필요하면 책도 사서 읽고 강의도 들을 수 있겠지만, 혹시 내가 엑스트라로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함. '한 달에 책 10권 읽기' 같은 것은 본인이 정말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웬만하면 하지 않았으면 하고, 강의 또한 꼭 필요한 내용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요소들(ex: 이걸 듣지 않으면 넌 뒤쳐지게 될 거야)이 전략적으로 기획되곤 한다는 점을 알고 필요한 범위 안에서 ..

기획자 노트 2023.04.28
멋에 대해 이야기하기

기획 단계에서 과하게 짜여진 논리가 결과물의 매력을 떨어트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그럴 때에는 멋있음과 멋없음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볼 수 있다. 그것보다는 이렇게 하면 훨씬 멋질 것 같아요, 라던가.맥락은 이해했는데 그렇게 하면 멋이 없을 것 같아요, 랄지. 멋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지만, 때때로 좋은 우회로가 될 수 있다.

기획자 노트 2023.03.21
아니다 싶으면 당당하게 주워담기

바톤 내부에서 논의를 할때, 나의 의견을 가열차게 뱉어놓고 보니 그게 아닐 때가 이따금 있다. 그럴 땐 그 자리에서 바로 당당하게 주워 담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과 생각이 달라졌네요.",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등, 표현할 수 있는 문장들은 많다. (물론 외부 미팅 자리에서는 상대 회사의 조직 문화에 따라 생각과 입장이 바뀌는 것을 바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프로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으니 설령 초기 아이디어와 다른 방향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도 상황을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

기획자 노트 2023.03.05
기획자가 개입할수록 디자인이 노잼이 되는 상황들

거칠게 구분하면 기획자는 말과 글이 주 무기인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일단 손을 움직여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디자인 피드백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서로 생각이 다른 경우, 보통은 말에 강한 기획자가 상대적 영향력을 가지기가 쉽다. 기획자의 직급이 더 높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그리고 논의 자리에서 기획자가 그럴 듯한 피드백을 던지고 디자이너가 그것을 수용했다 해도 결국 그 피드백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디자이너가 손을 움직여 봐야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기획자가 너무 논리가 세고 말이 많으면 디자인이 노잼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그러니 기획자 입장에서는 확실해보이는 길이 있다 해도 나의 성공율이 100%가 아닐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기획자..

기획자 노트 2023.03.05
논의 자리를 준비할 때 멤버 구성에 대한 감각 가지기

논의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이 꼭 와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불필요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점은 종종 간과되곤 한다. 적어도 바톤 내부의 논의자리에는 ‘그냥’ 참석하는 멤버가 없도록 하고, 참석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 중심으로 참석하도록 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논의에 자리에 와 있지만 발언도 기록도 하지 않는 관찰자로서 누군가 앉아있다 해도, 그 사람이 관찰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하겠다.

기획자 노트 2023.03.05
‘한 번에 0.5%씩,’의 느낌으로 일하기

잘 쓴 메일 하나, 잘 만들어진 문서 파일 하나가 전체 업무의 성과 안에서 가지는 각각의 기여도는 미미할 것이다. 한편 바톤 기획자의 업무 범위는 특정 구간에 집중되어 있는 디자인이나 개발과는 달리 최초 문의 응대부터 잔금 입금까지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있다. 그래서 기획자가 발휘하는 성과는 일상 업무의 매 순간에 0.5%, 1% 씩 조금 더 나은 시도를 아주 여러 번에 걸쳐 실행해서 전체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일상에서 기획자가 전화, 메일, 문자, 미팅, 스프레드시트 작성 등을 하는 행위는 디자이너가 디자인 컨셉 시안을 만드는 행위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러니 예를 들면 메일 쓰기와 관련해서도, 그냥 그런 메일과 잘 쓰여진 메일은 작지만 분명한 격차들을 만들어낸다는 감각을 가..

기획자 노트 2023.03.05
‘협력하기’와 ‘대응하기’ 사이에서 균형 잡기

기획자로서 다양한 사람을 겪다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방어적으로 대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화학작용이기 때문에 이러한 우리가 그런 상태가 되면 그 인상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전달된다. 기획자로서의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이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는 상대를 상호 협력하는 파트너로 리마인드를 해서 내면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기획자 노트 202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