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전략 언어를 이미지로 번역하기
블랑디바는 공동구매를 기반으로 탄탄한 팬덤을 형성한 영코어 타겟의 코스메틱 브랜드입니다. 2025년 블랑디바는 브랜드 전략 수립부터 비주얼 아이덴티티, 제품 개발까지를 아우르는 전면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했으며, 스튜디오 바톤에서는 그중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리뉴얼을 담당했습니다. 로고, 컬러, 타이포그래피는 물론 브랜드의 룩앤필과 페르소나, 패키지 콘셉트까지 브랜드의 시각적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기존 브랜드는 주요 타겟인 영코어 소비층에 비해 전반적인 인상이 다소 올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시각 요소 역시 일관된 기준 없이 파편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리뉴얼의 목표는 단순한 외형 개선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요소들을 하나의 톤앤매너로 정렬하고, 코스메틱 시장 안에서 블랑디바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서사와 비주얼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스메틱 브랜드의 정체성은 인물과 분위기를 통해 인식됩니다. 그러나 브랜드 전략 단계에서 주어지는 언어는 실무에 가져와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추상적입니다. 이 모호함을 어떻게 구체화시키고, 디자인으로 전환할 것인지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고객사 내부적으로는 브랜드 전략 수립 과정에서 리뉴얼된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상이 존재했으나, 그것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브랜드 전략 프레임은 존재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전개해 나갈지에 대한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로고, 컬러, 타이포그래피 등을 개별 요소 단위로 제안하는 방식은 의사결정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디자인 작업을 진행할 때 우리는 각 브랜드가 처한 상황과 고객사의 니즈,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방식의 제안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앱 서비스 중심의 테크 기업은 사용자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접점이 화면 아이콘과 UI이기 때문에, 로고 심볼의 형태와 컬러 인상이 브랜드 인식을 좌우합니다. 반면, 코스메틱 브랜드는 제품 화보 속 인물의 인상과 메이크업 스타일, 그리고 다양한 접점에서 드러나는 브랜드 이미지의 미학적 태도에 의해 인식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 프로젝트에서는 B.I를 로고 중심의 체계가 아니라, 페르소나와 룩앤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장면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로고와 이 컬러가 실제 브랜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로고·컬러·타이포그래피를 각각 제안하는 대신, 브랜드의 페르소나와 무드, 적용 이미지까지 연결한 종합적인 시각화 결과물을 1차 제안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사가 브랜드를 개별 요소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처럼 상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기획의 언어를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 혼재된 컨셉 키워드를 정제하기: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아질수록 인상은 오히려 흐려집니다. 특히 브랜드 리뉴얼 초반 단계에서는 시각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소비자와 내부 구성원 모두에게 명확하게 각인되고, 브랜드의 메시지가 빠르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더라도, 초기의 기준점이 분명해야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언어의 모호함을 페르소나와 이미지로 구체화하기: 코스메틱 브랜드라는 특성과, 전략을 구체화하는 단계라는 점을 고려해 본 프로젝트에서는 전반적인 ‘모호함’을 브랜드 페르소나, 즉 대표 모델 혹은 코어 타겟 사용자가 지향하는 미적 태도의 외형과 성격으로 치환하고, 이에 대응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활기찬’이라는 단어는 브랜드 룩앤필에서 ‘팝하고 장난기 있는 이미지’로 표현될 수도 있고, ‘신체적인 건강함과 운동성이 느껴지는 이미지’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 전략의 언어는 목표를 규정하는 출발점이자 단서이며, 이는 비주얼 브랜딩을 통해 시각적으로 완성됩니다. 언어로 말해진 전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치환함으로써, 추상적인 언어를 시각적으로 판별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 비주얼 브랜딩의 역할입니다.
- 아이덴티티 요소별 구현 방식을 설계하기: 이와 같이 브랜드 룩앤필이 정의되면, 로고, 컬러, 타이포그래피, 패키지, 사진 등 각 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이를 드러낼지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활기찬’이라는 전략 언어가 ‘컬러풀하고 장난끼 있는 이미지’라는 룩앤필로 구체화되었다면, 그에 맞는 로고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컬러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할지, 패키지 역시 어떤 인상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구조입니다.
다양하게 보여주고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와 같은 설계 논리를 바탕으로, 모델과 사진 콘셉트를 중심으로 한 무드보드 4안을 구성했습니다. 무드보드는 모델의 외형과 태도, 화보의 분위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포함해 브랜드 캠페인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영향을 미칠 인물상을 제안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블랑디바가 어떤 얼굴을 가진 브랜드인지, 그리고 블랑디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미지를 선망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페르소나와 룩앤필을 바탕으로, 통합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B.I 방향성을 제시하는 시안을 준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안 수는 계약 단계에서 3개 안 내외로 협의되지만, 본 프로젝트에서는 개별 시안의 완성도를 깊게 밀어붙이기보다, 브랜드가 취할 수 있는 여러 방향을 병렬적으로 비교·검토하는 과정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공통된 기준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6개 안의 방향성 시안을 구성해, 서로 다른 해석과 무드를 동시에 제시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각 시안은 로고와 컬러, 기본적인 톤앤매너가 결합된 최소 단위의 구현물로, 해당 방향이 지닌 인상과 태도를 빠르게 공유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한 시안 안에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세밀하게 전개하기보다는, 그 방향이 브랜드로서 어떤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는 결과물의 수를 늘리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탐색 단계였습니다.

앞선 4개 안의 무드보드와 B.I 방향성 시안 6개 안은 분리된 채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서로 교차하며 조합되는 구조였습니다. 무드보드를 통해 전략 언어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고 펼쳐 보이며, 로고·컬러·타이포그래피 등의 B.I 결과물이 적용되었을 때 종합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함께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고객사의 피드백 역시 추상적인 가능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활기차고 젊은 인상은 유지하되, 너무 어린 인상은 지양하면 좋겠다.”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는 브랜드이기에, 고정된 미의 완벽함을 전제하는 모델은 맞지 않겠다.”
“여러 캐릭터를 포용하면서도, 브랜드로서의 뾰족함과 선망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스포티한 인상보다는, 신비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미지의 모델이 적합하다.”
위와 같은 의견이 도출되며, 브랜드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전략 이전의 시각화, 시각화 이후의 전략

이후 여러 차례의 제안과 피드백 과정을 거쳐 로고, 컬러, 타이포그래피는 물론 브랜드의 룩앤필과 페르소나, 사진과 패키지 콘셉트까지 브랜드의 시각적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브랜드 전략이 먼저 완결되고 그에 맞춰 비주얼이 설계되는 전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B.I 디자인 결과물이 다시 버벌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페르소나와 룩앤필을 중심으로 한 시각적 제안이 구체화되면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태도와 언어 역시 더욱 선명해졌고, 전략의 방향 또한 조정되고 정제되었습니다. B.I 디자인은 전략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논의가 오갈 수 있는 신뢰 관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객사는 초기 전략안에 대해서도 고정된 해답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제안한 시각적 결과물을 근거로 다시 질문하고 수정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B.I 디자인을 통해 드러난 인상이 내부 논의에 영향을 미치며 전략적 방향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은 단순히 로고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가 어떤 인물로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특히 코스메틱 브랜드와 같이 감정적 인식과 선망성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잘 구축하는 것이 브랜드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번 리뉴얼은 B.I 디자인이 브랜드 전략과 병렬적인 위치가 아니라, 서로를 규정하고 보완하는 관계임을 확인한 사례였습니다.
by 이지혜